분당 꿈꾸는 교회를 섬기고 있고, 한국가사원 이사이면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목회를 하려고 발버둥치는 박창환 목사님의 칼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나를 돌아보는 칼럼이어서 성도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상대방을 비판할 때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위선적인 이중 잣대를 비꼬는 신조어입니다. 이 단어는 최근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Living Dictionaries)에 ‘naeronambul’로 등재되었으며, 'hypocrisy(위선)'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로남불은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입니다. 모든 사람은 내로남불입니다. 인간은 의롭지 못합니다. 공평하지 못합니다. 공평하지 못한 이유는 남의 죄는 한 눈에 잘 보이지만, 자신의 죄는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못하는 것은 안 보입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칼끝같이 예민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런 성향을 지적하시며,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4)고 꾸짖으셨습니다.
내로남불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내로남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잘 보이는데, 자신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읽기나 들음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저 설교는 누가 들어야 하는데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질책하는 구절로 설교할 때, 내 자신이 바리새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별로 없습니다. 주장하는 자세로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베드로의 말씀을 가르치면서(벨전 5:3), 자신이 주장하는 자세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목회자도 많지 않습니다. 자신은 항상 옳은 줄 압니다. 잘하는 줄 압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못 보는 한, 성경을 수십 번, 수백 번 통독해도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셔서 우리를 보게 하십니다. 빛을 비춰주시는 것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이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자기를 봅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이번 성령집회를 하면서 한평생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자신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조명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