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대양주 가사원장이신 송영민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함께 나누어드립니다.
목자, 목녀들이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교회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에게 “왜 우리가 이렇게 까지 섬기고, 희생해야 하나요?” , “다른 교회들 처럼 편하게 하면 안 되나요?” 와 같은 질문들을 듣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먼저‘목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목양은 생명을 낳는 거룩한 산고 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마치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엄마가 겪는 산고가 있어야 하듯이, 한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과정 역시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랜 인고의 시간과 해산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순산만 있지도 않습니다. 오랜 시간 희생의 섬김 뒤에 다시 세상으로 떠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절대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목양입니다. 목양의 본질은 관리가 아니라 영혼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목양은 치열한 씨름과 기다림입니다. 목양에는 한 사람을 붙들고 그가 영적으로 온전히 세워질 때까지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는 땀과 눈물이 있고, 내 자아가 온전히 죽어야 비로소 한 영혼이 세워집니다. 한영혼이 온전히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까지는 숱하게 엎치락 뒤치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눈물로 세례 간증을 했던 이가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아 애간장이 녹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양의 진정한 가치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 에도 여전히 본을 보이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목양은 비교 할 수 없는 기쁨 입니다. 목양이 이렇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신약교회의 공동체 모습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편안함과 즐거움도 죽어가던 영혼이 살아나고, 깨졌던 가정이 회복되며, 방황하던 한 사람이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목자 목녀들이 그 가치 있는 일에 쓰임 받고 있다는 기쁨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험되는 목양의 기쁨은 오직 해산의 수고와 섬김을 감당한 영적인 부모들 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들은 오늘도 이 거룩하고 고된 목양의 길을 기꺼이 순종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많은 목자들은 이러한 목양의 기쁨을 맛보기 전에 ‘나 중심적인 신앙의 독’을 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어려움들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고 끝까지 견디는 목자들이 그 과정을 통하여 목양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주님의 제자들이 한 둘씩 세워지면서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것이 가정교회를 하는 이유이며 평신도가 목양을 하도록 하는 이유입니다. 가정교회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결국 ‘세 축과 네 기둥’ 안에 이 목양의 본질이 녹여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세 축(목장 모임, 삶 공부, 주일 연합 예배)과 네 기둥(교회의 존재 목적, 제자 양육 방법, 성경적 사역 분담, 섬기는 리더십)은 단순한 시스템이나 조직의 뼈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평신도들이 목양의 과정을 통하여 주님이 어떻게 사랑 하셨는지, 어떻게 목양 하셨는지 그 마음을 깊이 알게 됩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 목양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형식적이고 편안한 신앙생활로는 결코 이 거친 세상을 이겨낼 강한 제자가 될 수도 없고, 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이 길이 주님이 보여준 목양의 본질이며, 이 시대 교회의 위기 가운데서 교회를 성경적으로 회복하는 길입니다.
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