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사님의 소개로 최근에 ‘모두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8명의 배우들은 모두 영화감독 겸 극작가들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제대로 작품 하나 쓰지 못하면서 모여서 신세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황동만이라는 친구는 20년동안 감독한번 데뷔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속에 있는 이야기는 너무 잘 표현합니다. 순수합니다. 눈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운 오리새끼입니다. 신세한탄하는 동료들에게 “그것이 뭐가 힘드냐””잘하면 돼”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황동만에게 “너는 감독 한번도 해보지 못한 놈이 할말없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주인공은 작품 하나 없고, 라면으로 한 끼를 떼워야 하는 현실적인 초라함에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위의 동료들은 주인공이 내뱉는 문장이나 스토리들을 무시하면서도 정작 자기의 글에는 그의 말과 생각에 의존해서 사용합니다. 상대방을 비아냥거리면서도 자신에게서 나오지 못하는 신선함에 의존하고 있는 그들의 씨름들…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실력으로 나의 자존감이 점검받고, 학생은 성적으로, 선수는 등수로 자존감의 점수가 매겨집니다. 세상은 그 외에도 돈, 자동차, 집, 영어 점수…이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합니다. 그런데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큰 교회에 다니는 성도는 ‘저는 어느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작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는 자기 교회 이름도 부르지 않고 ‘작은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소개합니다. 교회 크기가 자신의 자존감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유일한 나 자신’입니다. 실력도, 능력도, 가짐도, 외모도 아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를 만드셨다는 ‘유일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가장 존귀히 여기십니다.
세상은 한 줄로 세우고는 100M 결승골에서 등수를 매깁니다. 1등도 있고 꼴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한줄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각자가 달려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라고 360도의 방향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개성과 고유한 모습을 가지고 자기가 달려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면 모두가 1등이 됩니다. 나의 자존감은 경쟁의 틈바구니와 줄 서기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무가치함은 경쟁에서 나오지만, 나의 존귀함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시작됩니다.
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