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한 성도로부터, 카톡이 왔는데 회사에서 호칭과 관련해서 이제는 남자 여자, 남편 아내라고 하지 말고 People, Partner로 부르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성혁명’과 관련한 내용이 이미 시작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과 경제, 성과 정치는 밀착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성과 관련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기업’입니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하는 곳이기에,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장 앞서서 움직입니다. 또 하나는 ‘정치’입니다. 여론을 모아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설득력을 높여야하는 곳이 정치현장이기에,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이슈가 있으면 거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다보니, 동성애라든가 LGBTQ와 같은, 소위 ‘소수자’의 인권보호라는 명분하에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서 정치력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은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고, 법으로 규정되면 모든 활동을 제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호주도 그런 법안을 지난주에 통과시키려고 하다가 11월로 연기되었습니다.
이제는 정치의 모든 아젠더의 배후에는 ‘젠더이데올로기’가 깔려있을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영역은 정치, 경제만이 아니라, 교육, 사회, 문화, 종교….모든 영역에 깊숙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심각한 현상이 문앞에 와있다는 것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런 성혁명, 성정치라는 말이 왜 생겨났을까를 살펴보니까, 결국은 ‘자아가 진리’된 결과였습니다. 내가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습니다. 내가 싫으면 질서도 바꿀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전통도, 기존에 형성되어왔던 제도나 틀도 바꿀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가족, 교회라는 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것을 부부라고 규정해놓으니 자아가 제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존중받아서 남자 남자, 여자 여자가 부부로 좋다면 그대로 부부로 할수 있어야한다는 것이 성혁명입니다.
성혁명이 보편화되어가는 시대이지만, 그 저변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것은 ‘자아가 중심’이 된, ‘내가 하나님’되려고 하는 ‘선악과의 재현’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사조에서 분별할수 유일한 방법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진리임을 고백하고, 말씀을 읽는 것이 멈추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도, 가정도, 자녀도, 나도 Main Stream에 흘러가버릴 것입니다. 말씀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립니다.
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