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서울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보면서 저희들이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각들에 유연성을 주는 것 같아서 칼럼의 내용을 실어드립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추구해야 하는 말 가운데 ‘성숙’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 사람 참 성숙한 사람이다라고 하면 아마도 그 보다 더 좋은 칭찬이 없을 것입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Up & Down이 없고, 속이 깊어서 쉽게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배려하고 보호할 줄 알며, 자기에게 손해가 오거나, 위기가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기까지 그러한 성숙함을 꿈꾸고 또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숙해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목장이고 교회인 것 같습니다. 어? 목장이 당연히 성숙해야 하고, 또 교회가 성숙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교회가 성숙하지 못해서 교회에 대한 불신이 높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시겠지요. 백 번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목장과 교회가 성숙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가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존재목적은 안 믿는 사람을 초대하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 제자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에 대사명으로 그것을 주셨습니다(마28:19-20). 따라서 좋은 목장과 좋은 교회란 오늘 처음 나온 사람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몇 달 된 사람, 1년 된 사람, 3년 된 사람, 이런 식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이 같이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지요. 그렇다면 이런 교회가 절대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보다는 아직도 안정이 안 된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고 골치가 아픈 일들로 가득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따라서 좋은 교회란 쉴 새 없이 많은 새신자들이 들어오고, 때로는 영적으로 철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늘 말이 많고, 바람 잘 날이 없는 수준이 낮은 교회가 좋은 교회일 것이고, 만약 우리 교회가 그런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성숙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전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되고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교회의 성숙함은 어디서 보이는가? 나머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을 참아주고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뛰쳐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에서 보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사람이 들어와도 그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에서 교회의 성숙함이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머물러 있으면서 조금씩 변해 가기 때문에, 여러 단계의 영적수준의 사람들이 함께 있는 모습에서 교회의 성숙함이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 가운데 ‘이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하니 여기서 만나는 사람은 하나같이 성숙할 것이고, 그래서 내가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전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다는 여전히 다양한 실망스러운 사람들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목장에서 잘 어울리고 함께 생활해 가고 있다면 그것이 성숙함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내가 1년 전에 비해서 이렇게 바뀌었어. 내가 이런 사람이었는데 목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변했어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한 목장, 성숙한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성숙한 목장, 성숙한 교회를 꿈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영기 목사님의 ‘교회는 병원이다’ 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전도와 선교에 힘써서 영적으로 철없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 때문에 교회가 수준이 낮아지는 그런 교회를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
정목사